인명: 유리왕(琉璃王)[~18]아버지인 동명성왕을 찾고 왕이 됨 시점: 중국의 왕망(王莽)이 흉노를 정벌하기 위하여 고구려 군사의 출동을 요구하였으나 유리왕이 거부함[()~12()] 유리왕이 부여의 침입을 막아냄[()~13()]
요약해설
고구려 제2대왕이다. 이름은 유리(類利)이며 동명왕의 태자이다. 유리왕이 아버지를 찾아가서 왕이 되는 과정을 기술하였으며, 동명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도읍을 국내성으로 옮긴 일을 전한다. 유리왕 12년에는 중국의 왕망(王莽)이 흉노를 정벌하기 위하여 고구려에 군사의 출동을 요구하였으나 이를 거부하였다. 한(漢)나라를 공격하자 왕망은 유리왕을 ‘하구려후(下句麗侯)’라고 비칭(卑稱)하였다. 13년에 부여가 침범하였으나 대패시켰으며, 이듬해에는 양맥(梁貊)을 쳐서 멸망시키고 한(漢)나라의 고구려현(高句麗縣)을 빼앗았다. 18년 두곡리궁(豆谷離宮)에서 죽었다. 두곡동원(豆谷東原)에 장사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