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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002+AKS-AA25_24513_009_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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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명 : 와유록 (臥遊錄v9)
鬱陵島
[주:新羅史曰于山國島名鬱陵]
地誌鬱陵或曰武陵亦曰羽陵登高望之三峰岌嶪撑空而南峰稍低日初出時風恬浪靜則衆峰攢靑岩壑呈露沙汀樹木歷歷可指新羅智證王聞于山國負險不服命伊湌異斯夫爲阿瑟羅州軍主阿瑟羅江陵往討之斯夫以爲于山愚頑負險難以力服易以計下乃多造木獅子分載戰艦誑之曰伱不急下當放此獸摶噬之國人恐懼來降及高麗太祖十三年島人使白吉土豆獻方物毅宗聞羽陵地肥廣可立州縣遣溟州道監倉金柔立往視回啓曰島中有大山從山頂向東行至海濱一萬三千餘步向南行一萬五千步向北行八千餘步有村落基址七所或有石佛鐵鍾石塔多生柴胡藁本石南草土多嵓石民不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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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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居遂寢厥後崔忠獻議以武陵土壤膏沃多珍木海錯遣使視之有村墟屋址宛然於是移東郡民實之使還多以海中珍怪之物來獻其後屢爲風濤所蕩覆舟人多物故乃還其民及我朝太宗大王時聞流民迯入者甚多命三陟人金麟兩爲按撫使刷出空其地麟兩言島中土地沃腴竹大如杠鼠大如猫桃核大於升凡物稱是云世宗大王二十年遣縣人南灝率數百人往搜逋民盡俘金九等七十餘人出來成宗大王二年有告別有三峰島者乃遣朴宗元往覔之因風濤不得泊而還同行一船泊羽陵島只取大竹大鰒魚以歸啓曰島中無人矣
嘗遇一僧自稱壬辰之亂俘入日本丙午隨倭船至鬱陵島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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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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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大山三峰尤峻發島三面皆壁立萬仞南邊稍開豁然亂山若犬牙撑列水底舟道極險狹難入登岸則白沙平鋪長松列植山開望濶而江水流出緣江行十餘里則篔簹作藪不見天日大君梁柱小不减椽杠又穿藪行十餘里則有竹林其脩大若篔簹竹林旣窮而原野夷曠有村居墟落山多珍木藥草倭方伐竹採藥留渠守船鄰船適有同俘七人夜與相語天將曉發船以來日纔晡已到寧海地面云盖二島去此不甚遠一颿風可至于山島勢卑不因海氣極淸朗不登最高頂則不可見鬱陵稍峻風浪息則尋常可見麋鹿態獐往往越海出來朝日纔高三丈則島中黃雀群飛來接竹邊串
[주:島中竹實特時漂出形如大慱暴海女拾之爲雜佩篔簹及竹亦或漂出一節有數尺者宜箭筒比多有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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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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