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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한국사 기초사전 > 제목별 > 해동역사(海東繹史)
G002+AKS-CC11_C0000651
항목명(한자) 해동역사(海東繹史)
소표제 정의/규모/편찬경위/평가
주제어 역사서/북학운동
성격1 문헌
성격2 총서
시대 조선 후기
편저자 한치윤(韓致奫)/한진서(韓鎭書)
소장처
이칭
발행처
문화재지정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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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 학자인 한치윤(韓致奫)과 그의 조카 한진서(韓鎭書)가 편찬한 우리나라의 기전체(紀傳體) 통사(通史).
규모 필사본으로 한치윤은 원편(원편) 71권을, 한진서는 속편(續編) 15권을 지어 모두 86권이다. 속편은 지리고(地理考)로 한치윤이 10여 년의 작업에도 불구하고 동역사를 완성하지 못하고 죽자, 조카인 한진서가 대를 이어 편찬을 마친 것이다.
편찬경위 ≪해동역사≫란 이름은 청나라 마숙(馬驌)이 지은 ≪역사(繹史)≫란 책이름에서 유래하였다. ≪해동역사≫에는 편찬자들의 서문이나 범례가 없고, 유득공(柳得恭)의 서문만 있으며, 한치윤의 다른 저작이 없어서 편찬동기와 목적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한진서는 지리고의 서문에서'숙부께서 우리 나라 역사가 증거없이 서술되고 있는 형편을 개탄하셨다'고 하였는데, 이를 통해서 보면 ≪해동역사≫의 편찬동기는 엉성하게 편찬된 한국사를 체계적으로 기술하는 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정사체(正史體)인 기전체를 선택한 것이지도 모르겠지만, 세기(世紀)•지(志)•고(考)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표(表)는 생략되어 있다. 열전(列傳)이 따로 편성되어 있지 않은데, 인물고(人物考)로 대체한 듯하다. ≪해동역사≫에는 550종이 넘는 인용 서목이 눈에 띠는데, 중국측 사서가 530여 종이며 ≪일본서기(日本書紀)≫ 등 일본측 사서 20여 종이 들어 있는 것이 특기할 만하다. 다양한 중국측 사서의 인용은 당시 청나라와 문화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자료 수집이 가능해진 데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한치윤이 고증적 태도를 견지한 데 큰 이유가 있다. 일본측 사서가 들어간 것도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반에 걸쳐 일본과의 교류가 활발해진 데 힘입은 것이었다.
평가 ≪해동역사≫는 위서(僞書) 같은 외국측 자료를 사료비판 없이 인용하여 그들의 그릇된 한국사인식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 약점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사대(事大)와 교린(交隣)을 교빙(交聘)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여 국제관계에 대하여 나름의 관점을 가진 것이나, 서민문화를 정리한 것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당시 북학운동의 분위기를 역사연구에 반영한 것으로 식민지시대 문헌고증학자들에게 끼친 영향이 적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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