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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한국사 기초사전 > 유형별보기 > 최항(崔沆)
G002+AKS-CC11_C0002526
항목명(한자) 최항(崔沆)
소표제 정의/가계/활동사항
주제어 문신/최씨무인정권
성격1 인물
성격2 무신
시대 고려
생몰년 ?∼1257(고종 44)
본관 우봉(牛峯)
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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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257년(고종 44). 고려 후기의 무신집권자.
가계 본관은 우봉(牛峯). 처음 이름은 만전(萬全). 최우(崔瑀)의 서자로, 창기(娼妓) 서련방(瑞蓮房)의 소생이다. 대경(大卿) 최온(崔昷)의 딸에게 장가들었다가 병이 있다 하여 버리고 다시 좌승선(左承宣) 조계순(趙季珣)의 딸에게 장가들었다. 처에게서는 자식이 없었고, 중이었을 때 송서(宋㥠)의 비를 사통하여 최의(崔竩)를 낳았다.
활동사항 그는 최씨무인정권의 3대 집권자였다. 처음에 송광사(松廣寺)에서 중이 되어 선사(禪師)가 되었으며, 쌍봉사(雙峯寺)로 옮긴 뒤 무뢰승(無賴僧)들과 함께 재화를 모았다. 1248년(고종 35)에 아버지 최우가 병이 들자 환속하여 좌우위상호군•호부상서가 되었으며, 이때 임익(任翊)으로부터 글을 배우고 권위(權韙)로부터 예를 익혔다. 뒤이어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가 되었고 이듬해 최우가 죽자 뒤를 이어 정권을 잡아 은청 광록대부 추밀원부사 이병부상서 어사대부태자빈객(銀靑光祿大夫樞密院副使吏兵部尙書御史大夫太子賓客)이 되고 동서북면병마사(東西北面兵馬使)를 겸하면서 교정별감(敎定別監)이 되었다. 특히 시기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평소 민심을 얻고 있던 민희(閔曦)•김경손(金慶孫)을 귀양보내고 주숙(周肅)과 박훤(朴暄)을 죽였다. 또 1251년 계모 대씨(大氏)를 과거의 사감으로 독살하고 앞서 귀양보냈던 김경손을 죽였다. 집권 초기에는 무당을 내치고 각 지방의 별공(別貢)과 어량선세(魚梁船稅)를 면제하며, 교정수획원(敎定收獲員)의 역할을 안찰사(按察使)에게 위임하는 등 인심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차츰 호사와 향락을 일삼으며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많이 죽여 원한을 샀다. 몽고에 대해서는 1252년 고종이 승천부(昇天府)의 신궐에 가서 몽고의 사신을 만나려 하는 것을 굳이 반대하는 등 강경책을 썼다. 이때 문하시중으로 삼고 진양후(晉陽侯)에 봉해졌으나 사양하였고, 1253년에는 문하시중 판이부어사대사(門下侍中判吏部御史臺事)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였다. 같은해 몽고의 야굴(也窟)이 대군을 이끌고 침입하였을 때 종실 영녕공 준(永寧公 綧)으로부터 태자나 왕자 안경공 창(安慶公 淐)을 보내어 회군을 청하라는 권고의 글이 왔으나 거부하였다. 1254년에 왕이 부(府)를 열게 하였으나 이를 사양하였으며 뒤이어 중서령 감수국사가 되었다. 1256년에 제중강민공신(濟衆康民功臣)에 봉해졌고, 1257년 죽은 뒤에 진평공(眞平公)에 추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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