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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한국사 기초사전 > 유형별보기 > 가야산(伽倻山)
G002+AKS-CC11_C0001101
항목명(한자) 가야산(伽倻山)
소표제 정의/이칭/문화재지정사항/개관/자연환경/역사/문화유적
주제어 해인사/팔만대장경
성격1 지명
성격2 자연지명
시대 기타
위치 경상남도 합천군/경상북도 성주군
문화재지정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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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가천면•수륜면과 경상북도 성주군에 걸쳐 있는 산.
이칭 우두산(牛頭山)•설산(雪山)•상왕산(象王山)•중향산(衆香山)•기달산(怾怛山) 등의 별칭이 있다.
문화재지정사항 국립공원 제9호.
개관 높이 1,430m의 [[가야산;은 역사 이래 산악신앙의 대상으로서 고려 팔만대장경판을 간직한 해인사가 입지하고 있는 불교성지로서, 그리고 선인들의 유람과 수도처로서 민족의 생활사가 살아 숨쉬는 해동영지(海東靈地)로 칭송되는 명산이자 영산(靈山)이다. 해인사(海印寺)와 그 입구의 홍유동(紅流洞)계곡•용문(龍門)폭포•무릉교(武陵橋)로 대표되는 가야산 해인사일원은 조선8경(朝鮮八景)의 하나로 1966년에 사적 및 명승 제5호로, 1972년에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택리지≫에는 가야산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떠나 있으면서도, 그 높고 수려함과 삼재(三災:旱災•水災•兵禍)가 들지 않는 영험한 명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자연환경 주봉인 상왕봉(象王峯, 1,430m)과 두리봉(1,133m)•남산(南山, 1,113m)•단지봉(1,028m)•남산 제1봉(1,010m)•매화산(梅花山, 954m) 등 1,000m 내외의 연봉과 능선이 둘러 있고, 그 복판에 우리나라 3대사찰 가운데 하나인 해인사와 그 부속암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가야산일대의 지질은 화강편마암 및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해인사와 신촌락(新村落)이 있는 치인리골과 홍류동계곡은 화강암침식곡이다. 가야산의 기후는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대륙성기후의 특색을 나타내므로, 기온의 연교차•일교차가 매우 크다. 또 해인사일대는 고도가 높기 때문에 겨울에는 합천군의 1월 평균 평지기온 -1.1℃보다 5℃ 이상 낮다. 강수량은 여름철의 지형성 강우로 연강수량 1,100㎜ 이상이며, 하계집중현상 또한 높다. 홍류동계곡과 해인사일대 등 높이 1,000m까지는 소나무와 전나무를 주종으로 한 3백여 종의 수목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초본식물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정상 부근에 있는 매발톱나무•수수꽃다리•둥근정향나무•백리향의 군락은 특기할 식물이다. 동물상은 부엉이•꾀꼬리•꿩•산까치 등 100여 종의 조류가 있고, 포유류로는 멧돼지•너구리•산토끼, 이밖에 비단개구리 등 희귀동물도 서식하고 있다.
역사 가야산은 그 지명과 산신전설에서 옛 가야지방을 대표, 상징하고 있다. 한국의 명산에는 산신이 있는데, 가야산신은 정견모주(正見母主)라는 여신이다.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가야산신 정견모주는 천신 이비가지(夷毗訶之)에 감응(感應)되어 대가야왕 뇌질주일(惱窒朱日)과 금관국의 왕 뇌질청예(惱窒靑裔)를 낳았는데, 뇌질주일은 대가야의 시조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 뇌질청예는 금관국(혹은 本伽倻라고도 함) 시조 수로왕의 별칭이다. 가야연맹의 맹주는 지금 가야산이 있는 고령군•합천군 일대의 대가야와 김해를 중심한 금관가야였다. 가야시대의 가야산은 가야연맹의 성산(聖山)으로 산악신앙의 대상이며, 산신 정견모주는 가야지역의 여신이었다. 따라서 해인사 경내에 있었다는 정견천왕사는 가야산신의 사당이고, 가야산 정상에서 근래까지 지내온 산신제는 옛 가야지방의 신이 산악신앙 형태로 잔존한 것이다. ≪세종실록지리지≫의 "가야산 형승은 천하에 뛰어나고 지덕은 해동에 짝이 없으니 참으로 수도할 곳이다."라는 기록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가야산은 대표적인 불교성지이다. 이를 대표하는 해인사는 애장왕의 보은(報恩) 창건, 고려 태조의 귀의(歸依), 조선 태조의 발원(發願), 그리고 세종세조성종의 중창 지원 등 창건과 중흥에 있어서 국가의 각별한 지원을 받았다. 해인사가 민족의 고귀한 문화유산인 고려 팔만대장경판을 600여 년 동안 안전하게 보전함으로써, 법보종찰(法寶宗刹)의 명성을 누리고 국가가 위란(危亂)에 처했을 때 일어난 불교 호국전통의 중심지였다. 해인사는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그동안 7차의 대화재로 50여 동의 해인사 건물들은 대부분 200년 이내에 중건된 것들이다. 그러나 고려 팔만대장경판과 이를 봉안한 장경각만은 한번도 화를 입지 않고 옛 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해인사는 802년(애장왕 3) 순응(順應)이정(理貞)이 창건하였다. 해인사 창건기록인 〈가야산해인사고적기(伽倻山海印寺古籍記)〉에 의하면, 순응과 이정은 중국에 가서 보지공(寶誌公) 문하에 불법을 구하였더니, 문도가 지공의 답산기(踏山記)를 주고 아울러 임종시의 말을 전하였다. 두 사람이 지공의 묘소를 찾아가 법을 청하니 수일 후 지공이 나와 설법을 하고 의발(衣鉢)을 전하며 간곡히 이르되, "너희 나라 우두산 서쪽에 불법이 크게 일어날 곳이 있으니, 너희가 환국하여 절을 창립하라."하는 말을 듣고 귀국하여 애장왕의 지원을 받아 창건하였다. 그리고 고려 태조는 후백제와 싸우다 해인사에 들어와 주지 희랑에게 구원을 청하니 희랑이 군을 일으켜 태조를 도와 후백제를 격파하였으므로, 태조가 전답 500결을 내려 절을 확장하도록 하였다. 조선 태조는 1398년 강화도에 있던 고려 팔만대장경판을 [[한양;에 잠시 옮겼다가 뒤에 해인사에 봉안하고, 세조는 대장경판각을 확장, 보수하였으며, 1488년에는 왕명을 받은 학조(學祖)가 대적광전(大寂光殿)•대장경판각 등을 비롯하여 160여 칸의 건물을 중창하였다.
문화유적 중요건물로는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명부전•삼성각•응진전(應眞殿)•조사전(祖師殿)•퇴설당(堆雪堂)•응향각(凝香閣)•관음전•궁현당(窮玄堂)•구광루(九光樓)•경학원•명월당(明月堂)•사운당(四雲堂)•해탈문•국사단(局司壇)•봉황문•일주문(一柱門) 등이 있다. 부속사찰과 암자로는 청량사(淸凉寺)•백련암(白蓮庵)•홍제암(弘濟庵)•약수암•원당암(願堂庵)•삼선암(三仙庵)•금선암(金仙庵)•국일암(國一庵)•희랑대(希郞臺)•용탑선원(龍塔禪院)•길상암(吉祥庵)•지족암(知足庵)•보현암(普賢庵) 등 13개 사암(寺庵)이 있으며, 서부 경상남도지역 합천•거창•산청•함양•진주 등 5개 군의 65개 말사를 거느리고 있다. 해인사에는 국보 제32호인 해인사대장경판과 국보 제52호인 해인사장경판전(海印寺藏經板殿)을 비롯하여 해인사석조여래입상(보물 제264호)•반야사원경왕사비(般若寺元景王師碑, 보물 제128호)•해인사원당암다층석탑 및 석등(海印寺願堂庵多層石塔―石燈, 보물 제518호) 등 3점의 보물과 상탑향로(象塔香爐)•옥제가화(玉製假花)•희랑조사자조목상(希郞祖師自彫木像)•오백나한도(五百羅漢圖)•봉황촛대•일영의(日影儀)•순은향로•옥등잔•숙종어필병풍(肅宗御筆屛風)•오채병풍(五彩屛風)•무공수정(無孔水晶) 등 200여 점의 사보(寺寶)를 간직하고 있다. 명산•유람지로서의 가야산을 기록한 많은 시문(詩文)은 최치원의 가야산 입산에서부터 나타난다. 최치원은 신라 말의 대시인•문장가로서 우리나라 한문학의 조종으로 칭송되거니와, 신라의 기울어짐을 보고 은퇴하여 명승지를 유람하며 한거자적(閑居自適)하다가, 마침내 가족을 이끌고 가야산 속에 은둔하였다. 최치원이 살던 곳을 치원촌(致遠村)이라 하였는데, 후에 치인촌(治仁村)으로 불리다가 현재 치인리가 되었다. 최치원은 <해인사묘길상탑기(海印寺妙吉祥塔記)>를 찬술하기도 하였는데, 최치원의 자취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은 홍류동계곡의 제시석(題詩石)이다. 이곳은 최치원이 바둑을 두던 곳〔碁閣〕이라고도 하는데, 치원대(致遠臺)로도 불리는 바위에는 최치원의 <가야산독서당시>가 새겨져 있다. 가야산이 있는 합천군 가야면을 중심으로 성주군과 거창군의 일부를 포함한 총면적 57.8㎢가 가야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가야산의 주요관광자원은 홍류동을 비롯한 계곡과 해인사일대, 그리고 가야산연봉•능선으로 자연경관과 역사적•문화적 경관이 조화를 이룬 대표적인 관광지로 주변에는 함벽루(涵碧樓)•연호사(烟湖寺)•대가야성터•황계폭포(黃溪瀑布) 등 많은 고적•관광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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