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
도움말 |
개인정보처리방침 |
한국학전자도서관

검색 특수문자입력기



















HOME > 한국사 기초사전 > 유형별보기 > 원효(元曉)
G002+AKS-CC11_C0000330
항목명(한자) 원효(元曉)
소표제 정의/가계/활동사항/사상/업적
주제어 승려/불교/화쟁사상
성격1 인물
성격2 종교인
시대 통일신라
생몰년 617(진평왕 39)∼686(신문왕 6)
본관
시호

관련 이미지
  

정의 617(진평왕 39)∼686(신문왕 6). 통일신라 때의 승려.
가계 성은 설씨(薛氏), 원효는 법명(法名). 아명은 서당(誓幢) 또는 신당(新幢). 잉피공(仍皮公)의 손자이며, 내마(奈麻) 담날(談捺)의 아들이다. 태종무열왕의 둘째딸인 요석공주(瑤石公主)와의 사이에서 설총(薛聰)을 낳았다. 경상북도 압량군 불지촌(押梁郡 佛地村) 출신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인 불지촌은 발지촌(發智村) 또는 불등을촌(佛等乙村)으로도 불렀다고 하는데, 지금도 신문왕 당시 원효가 지었다는 금당(金堂) 자리가 남아 있다.
활동사항 15세 즈음에 승려가 되어 수도에 정진하였다. 자신의 집을 희사하여 초개사(初開寺)를 세우고 자신이 태어난 집 자리에는 사라사(沙羅寺)를 세웠다. 그는 일정한 스승을 모시고 공부하지 않고 불교서적을 널리 공부하여 한국불교사에 길이 남는 최대의 학자이자 사상가가 되었다. 기록에는 고구려로부터 망명하여 완산주(完山州)에 와 있던 보덕(普德)을 스승으로 하여 공부하였다는 내용도 있다. 시대적으로 보아 자장(慈藏)으로부터 배웠을 가능성이 많다. 650년(진덕여왕 4) 의상(義湘)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길을 떠나 요동까지 갔다가 도중에 고구려 순찰대에 잡혀 돌아왔다. 661년(문무왕 1) 다시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들어가는 도중에 해골에 괸 물을 마시고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으며, 사물 자체에는 깨끗함이나 더러움이 없다. 진리는 결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터득하고 의상과 헤어져서 돌아왔다. 그 무렵에 태종무열왕의 딸인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았다. 이와 같이 승려의 신분으로서 계율을 지키지 못한 사실은 오히려 원효로 하여금 더욱 위대한 사상가로 전환하게 하는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 그뒤 스스로를 소성거사(小性居士)라고 부르며 속인(俗人) 행세를 하였다. 어느날 한 광대가 이상한 모양을 한 큰 표주박을 가지고 춤추는 놀이를 구경하고는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리하여 광대와 같은 복장을 하고 다니며 불교의 이치를 담은 노래를 지어 세상에 퍼뜨림으로써 무식한 대중들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 수 있도록 하였다. 그 노래를 무애가(無碍歌)〉라 불렀다. 그 줄거리는 "모든 것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라야 생사(生死)의 편안함을 얻느니라."는 것으로 ≊화엄경(華嚴經)≋의 이치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별다른 이유도 없이 미친 사람과 같은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하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술집이나 기생집에도 드나들었다. 또한 금빛 칼과 쇠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며 돌에 글을 새기기도 하고, 혹은 ≊화엄경≋에 대하여 설명을 하는 책을 지어 그것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어떤 때에는 가야금과 같은 악기를 들고 사당(祠堂)에 가서 음악을 즐기기도 하였다. 때로는 일반 사람들의 집에서 머물기도 하고, 혹은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좌선(坐禪)을 하는 등 마음내키는 대로 기회를 좇아 생활하였다. 그의 생활태도에서는 어떤 일정한 틀에 박힌 생활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행적 또한 뚜렷한 어떤 규범을 따르지 않았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방법도 일정하지 않았다. 어떤 때에는 받았던 밥상을 갑자기 내동댕이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구하기도 하였고, 어떤 때에는 입안에 물고 있던 물을 뱉어 불을 끄기도 하였다. 같은 때에 여러 곳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온 천하를 다 찾아도 자취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의 불교사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알 수 있는 저서로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이 있다. 그는 ≊금강삼매경론≋이라는 불경에 대한 해설서 3권을 지어 황룡사에서 왕족과 여러 대신들 및 이름 높은 승려들에게 그 경전의 깊은 뜻을 강의하였다. 그의 강설을 듣고 오만한 승려들은 저절로 찬양하며 그를 무시하던 자신들을 부끄러워하면서 깊이 뉘우쳤다고 한다. 그뒤 조용한 곳을 찾아 도를 닦고 책을 저술하는 일에만 전념하였다. 특히 그의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疎疏)≋는 중국 고승들이 해동소(海東疏)라 하여 즐겨 인용하였는데, 이 책은 ≊금강삼매경론≋과 함께 그의 세계관을 알 수 있는 위대한 저술이다. 그의 사상은 너무나 다양하여 헤아리기 어려우나 항상 '하나'라는 구심점을 향하였고, 화쟁(和諍)과 자유를 제창하였다.
사상 일심사상(一心思想) 원효의 일심사상은 ≊금강삼매경론≋ • ≊대승기신론소≋ 등 그의 저술에 잘 나타나 있다. 인간마음의 근원을 깊이 통찰하여 본래의 깨달음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 즉 귀일심원(歸一心源 : 일심의 원천으로 돌아가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설정하고 육바라밀(六波羅蜜)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만법귀일(萬法歸一) • 만행귀진(萬行歸眞)을 굳게 믿고 사상과 생활을 이끌어갔다. 그리고 일심이야말로 만물의 주추(主樞)이며, 일심의 세계를 불국토(佛國土) 극락으로 보았고, 이것을 대승(大乘)•불성(佛性)•열반(涅槃)이라고 불렀다.
화쟁사상(和諍思想) 원효는 어느 한 종파에 치우치지 않고 ≊화엄경 ≋• ≊반야경(般若經) ≋• ≊열반경(涅槃經) ≋•≊ 해심밀경(海深密經) ≋• ≊아미타경(阿彌陀經)≋ 등 대승불교 경전 전체를 섭렵하고 두루 깨달은 사람이다. 그리하여 전체 불교를 하나의 진리에 귀납하고 종합정리하여 자기 분열이 없는 보다 높은 입장에서 불교의 사상체계를 세웠다. 이러한 그의 조화사상을 화쟁사상이라고 한다.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은 바로 이를 보여 주는 핵심적인 저술이다. 그는 여러가지의 다른 이론을 십문(十門)으로 모아 정리하고 회통(會通)함으로써 일승불교(一乘佛敎)의 건설을 위한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그의 통불교적 귀일사상은 한국불교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는 다음과 같은 철저한 논리를 가지고 화쟁을 주장하였다. 즉 "쟁론(諍論)은 집착에서 생기는 것이며, 불도(佛道)는 넓고 깊어서 걸림도 막힘도 없으므로 일체의 타의(他義)가 모두 불의(佛義)이다. 따라서 어느 이론이든지 옳지 않은 것이 없고 팔만 법문(八萬法門)이 모두 이치에 맞는 것이다. 그런데 견문이 적은 사람은 좁은 소견으로 자기의 견해에 찬동하는 자는 옳고 견해를 달리하는 자는 그르다 하니, 이것은 마치 갈대 구멍으로 하늘을 본 사람이 그 갈대 구멍으로 하늘을 보지 않은 사람들을 보고 모두 하늘을 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무애사상(無碍思想) : 원효의 무애사상은 그의 사생활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는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철저한 자유인이었다. "일체에 걸림이 없는 사람은 단번에 생사를 벗어난다(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라고 한 그의 말을 보더라도 그의 무애사상은 짐작된다. 그는 부처와 중생을 둘로 보지 않았으며, 오히려 "무릇 중생의 마음은 원융(圓融)하여 걸림이 없는 것이니, 태연하기가 허공과 같고 잠잠하기가 오히려 바다와 같으므로 평등하여 차별상(差別相)이 없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철저한 자유가 사람들 마음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스스로도 철저한 자유인이 될 수 있었으며, 그 어느 종파에도 치우치지 않고 보다 높은 차원에서 일승(一乘)과 일심(一心)을 주장하였다.
업적 원효는 당시 왕실 중심의 귀족불교를 민중불교로 바꾸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또 종파주의적인 방향으로 치닫던 불교이론을 고차원적인 입장에서 회통시키는 화쟁사상을 성립시켰다. 그는 또한 학승(學僧)으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이에 걸맞게 많은 저술활동을 하였다. 현존하는 그의 저술은 20부 22권이 있으며, 현재 전해지지 않는 것까지 포함하면 100여 부 240권이나 된다. 특히 ≊금강삼매경론≋, ≊대승기신론소≋, ≊대승기신론종요(大乘起信論宗要)≋, ≊화엄경소(華嚴經疏)≋, ≊화엄경종요(華嚴經宗要)≋, ≊법화경종요(法華經宗要)≋, ≊열반경소(涅槃經疏)≋, ≊열반경종요(涅槃經宗要)≋, ≊유마경소(維摩經疏)≋, ≊유마경종요(維摩經宗要)≋, ≊금강반야경소(金剛般若經疏)≋, ≊반야심경소(般若心經疏)≋, ≊능가경소(楞伽經疏), ≊능가경종요(楞伽經宗要)≋,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 ≊대혜도경종요(大慧度經宗要)≋, ≊보성론종요(寶性論宗要)≋, ≊섭대승론소(攝大乘論疏)≋, ≊성유식론종요(成唯識論宗要)≋, ≊삼론종요(三論宗要)≋, ≊중관론종요(中觀論宗要), ≊장진론종요(掌珍論宗要)≋, ≊범망경종요(梵網經宗要), ≊아미타경통찬소(阿彌陀經通讚疏), ≊아미타경소(阿彌陀經疏), ≊무량의경종요(無量義經宗要), ≊무량수경소(無量壽經疏), ≊무량수경종요(無量壽經宗要) 등을 저술하여 심오한 불교철학을 일반 신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sp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