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류(戶籍類)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 디지털 아카이브
 호적류(戶籍類)   
 
  G002+AKS-BB55_B02600164E
해제작성 권오정
해제작성일 2007-07-23
간행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시기 1861(哲宗12)
【정의】
1861년(哲宗12) 박래목(朴來穆)이 자신의 호(戶) 내 가족구성원과 소유노비의 인적사항을 기록하여 밀양부(密陽府)에 제출한 호구단자(戶口單子).
[주제]
본 문서는 기두(起頭)부가 준호구식을 따르고 있어, 준호구와 호구단자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통호기록을 나중에 부기한 점과 가족원 기록을 별행으로 기록한 점으로 보아 호구단자에 가까워 보인다. 박래목(1846~1926)은 박한좌(朴漢佐, 1823~1846)의 양자로, 생부는 박한기(朴漢驥, 1804~1867)이다. 박래목은 양부 박한좌에 이어 2대째 양자로 들어온 인물이다. 그의 증조부 박세우(朴世宇)는 세 아들을 두었지만, 모두 손이 귀하여 박한좌의 양자를 구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박한좌와 박한기는 박함(朴諴)을 동고조로 하는 8촌간이다. 박한좌가 요절한 탓에 처 광주이씨(光州李氏)는 1861년 당시 34세에 불과하나, 양자 박래목의 어머니로 기록되었다. 소유노비는 앙역(仰役) 노비 3구(口)만이 등재되었다. 가내 노동을 위해 꼭 필요한 정도의 노비만이 남아 있는 모습이다. 더 이상 노비노동을 통해 전답을 경작하거나 부를 취하는 것이 어려워진 조선 말기의 상황을 읽을 수 있다. 동시에 종손의 연이은 요절로 어려워진 밀양박씨가의 살림살이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박병련·정수환, 「밀양 밀성박씨의 가계와 소장 고문서」, ��고문서집성 76��, 한국학중앙연구원,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