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재기(分財記)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 디지털 아카이브
 분재기(分財記)   
 
  G002+AKS-BB55_B02500279E
해제작성 장을연
해제작성일 2007-07-13
간행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시기 1620(光海12)
【정의】
1620년(光海君12)에 朴瑜 妻 孫氏가 朴文立에게 재산을 별급하고 작성해 준 분재기.
[주제]
1620년(光海君12) 7월 12일에 朴瑜 妻 淑人 孫氏가 長子 朴文立에게 宗家 建立을 위한 財源으로 母邊의 奴婢를 별급하고 그 내용을 기록한 분재기이다. 이전에 박유가 종가 건립을 위해 고모댁에서 正木 8同을 받았으나 다 써버렸고, 박유 사후에 가사가 기울어 박유의 처가 부득이 박유의 新奴·新婢 각 3口와 그들의 後所生을 장자 문립에게 허급하여 종가 건립에 쓰도록 하였다. 다만 奴 奉男의 경우에는, 박유가 살아 있을 때 防役에 대한 대가를 지불 받았으므로 방역시키고 신공의 징수를 제외시키도록 조처하였다. 財主 손씨가 ‘朴瑜妻孫氏’라는 印文이 새겨진 圖書를 찍었고, 證人으로 同生娚 孫宗賀와 家翁同生弟 朴玏이 참여하여 着名·署押하였다. 家翁同生弟 朴璿이 筆執으로서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용어]
別給이란 득남, 과거 합격, 관직 제수 등 축하할 일이나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 일부의 재산을 증여하는 것을 말하며, 그 내용을 기록한 문서를 별급문기라 한다. 정식 재산상속은 아니지만 재산을 나누어 주는 행위이므로 조선시대의 재산상속의 하나로 볼 수 있다. 筆執은 문서를 작성할 때 문서를 기록한 자를 말한다. 주로 所有權과 관련된 이들이 證人이나 筆執으로 참여하는데, 이는 후에 발생할 수 있는 分爭을 막기 위한 것이다. 新奴婢는 혼인 시에 별급 받은 노비를 뜻한다. 新婢는 轎前婢라고도 한다.
[인물]
朴瑜(1576~1618)는 朴毅長의 장남으로 1593년(宣祖26)과 1594년(宣祖27)에 무과에 두 번 급제하여 訓鍊院主簿와 長鬐縣監을 역임하였으며, 朴毅長의 代加를 통해 通訓大夫에까지 올랐다. 朴文立(1602~1673)은 朴瑜의 장남으로 號는 自足堂이다. 품계는 承仕郞에까지 올랐다.
[번역]
만력(萬曆) 48년(1620) 경신 7월 12일 장자 문립(文立)에게 글을 만들어 주는 일은 남편이 살아 있을 때 종가(宗家)를 조성하기 위해 정목(正木) 8동을 고모님께 받아 내어 앞뒤로 이리저리 써서 남아 있지 않다. 하늘에게 받은 목숨이 기박(奇薄)하여 뜻하지 않게 세상을 뜨니 조그마한 가계의 살림이 장사를 지내는 데 더욱 곤란하게 되었다. 작지 않은 종가(宗家)로서 다른 조항으로는 절대로 장사를 지낼 수가 없으므로 그 자손 된 도리로 아주 미안할 뿐 아니다. 뜻밖에 아버님의 말씀도 불효가 아니겠냐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남편의 신노(新奴) 걸이(傑伊) 나이 48 계유와 동 노의 양처(良妻)가 함께 낳은 1소생 노 봉남(奉男) 나이 13 무신과 3소생 비 봉개(奉介) 나이 9 임자와 4소생 노 봉희(奉希) 나이 4 정사와 5소생 비 춘이(春伊) 나이 2 기미와 동 노의 다른 양처와 함께 낳은 비 봉학(奉鶴) 나이 3 무오생 등을 너에게 영영 허급하니 네가 동 노비 등의 후에 낳은 자손을 아울러 부리며 종가가 가볍지 않으니 집을 지어서 남편이 생전에 이루지 못한 한을 위로해 주되 노 봉남은 남편이 살아 있을 때 대략 값을 받았으니 그 몸만은 우선 방역(放役)하고 자손 외에 그 몸에는 징공(徵貢)하지 말 일이다. 재주 고통훈대부 행거제현령 박유(朴瑜) 처 숙인 손씨(도서) 증 동생남 통훈대부 행중부주부 손종하(孫宗賀)(착명)(서압) 남편의 아우 어모장군 행선전관 박륵(朴玏)(착명)(서압) 필집 남편의 아우 유학 박선(朴璿)(착명). 김건우-번역
【특징】
본 문서와 같이 일반적으로 고문서에서 夫人의 圖書는 黑文方印이다.
【비고】
문서의 크기는 79.5(세)×60.3(가)cm이다.
【참고문헌】
『經國大典』 『大典會通』 鄭求福,「무안박씨 무의공가의 사회경제적 기반과 소장고문서의 성격」,『古文書集成』82, 한국학중앙연구원, 2005. 문숙자,『조선전기의 재산상속』,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0. 최승희,『한국고문서연구』, 지식산업사, 2003. 法制處,『古法典用語集』, 育志社,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