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면(南面) 하반포(下反浦) 화민(化民) 박시찬(朴市燦)과 박회찬(朴晦燦) 등이 다음과 같이 통분하는 일로 삼가 아룁니다. 저희들의 6대조 이하 4세(四世)의 분묘는 본부(本府) 남쪽 웅창(熊倉) 화림산(花林山)에 위치하고 있는데 좌우 4총(塚)의 무덤이 한 언덕에 함께 안장되어 있습니다. 산 아래에 약간의 전토(田土)가 있어 묘지기 세 명에게 나누어 주어 그들로 하여금 이 곳을 지키게 하였는데 2백여 년 동안 저희 집안에서 온전히 소유하고 있던 곳입니다. 대저 이 선산은 본부 남쪽에 제일 높은 곳을 근거로 하여 한 산으로 빙 둘러 국내(局內)가 되었습니다.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 국내(局內)의 지세가 협착하고 주산(主山)과 안산(案山)이 벽처럼 서 있고 두 산의 머리 부분이 마주 대하여 보수(步數)는 비록 멀지만 바라보면 마치 가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본래부터 타인들이 입장(入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십 년 전까지 타인의 무덤이라곤 전혀 없었습니다. 지난 몇 년 전에 어떤 사람이 산기슭 아래에 투장(偸葬)하였는데 응당 금단(禁斷)해야 하는데 무덤 주인을 붙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일이 있고 난 뒤로부터 이따금 투장하는 단서가 되었지만, 거주지와는 거리가 멀고 투장한 사람을 찾을 길이 없어 고질적인 병폐가 되었으니, 어찌 간악한 마음을 점점 생겨 지금에 이르러 매우 가까운 곳에 곧바로 투장하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런데 본읍(本邑)에 거주하는 도장(都長) 김성근(金性根)이라는 상놈이 금년 2월분에 아내 시신을 저희 선조의 묘소 안대(案對)에 몰래 매장하였습니다. 저희들이 알지 못하다가 또다시 3월 12일 축시(丑時)에 형의 시신을 저희 선산 묘소 아래에 묻으려 하는데 묘지기가 그 상황을 적발하고 이틀 전에 와서 저희들에게 알렸습니다. 저희들은 이 상놈을 불러서 그 죄상을 따지니 그 자가 즉시 죄를 자복하고 스스로 물러나기를 청하였습니다. 저희들은 젊은 사람 서너 명을 보내서 산을 살피게 하니 그 안산(案山)에 매장하였던 곳은 예전에 일찍이 무덤을 파서 옮겼던 땅으로, 곧장 바라 뻗어있어 안산과 만나기 때문에 자손들도 그 곳에 묘소로 쓰지 못하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김성근이 새로 무덤을 쓴 곳 중 하나는 묘혈(墓穴) 아래 앞부분이고, 하나는 백호(白虎) 머리 부분에 되고 뒤에는 마주 대하는 곳이었습니다. 저들이 비록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말하였지만 흉악한 계략을 예측하기 어려워 계속 산 아래에 머무르면서 변고가 발생할까 예의주시하였습니다.
11일 한 밤중에 저 상놈이 상여를 짊어지고 곧장 진입하니, 저희들이 길을 막고 꾸짖었지만 저 상놈들이 크게 위세를 떨치며 거리낌 없이 돌진하여 형세상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들은 하는 수 없이 먼저 그 무덤으로 가서 빙 둘러 앉자 그들 역시 거짓이 탄로가 나고 계략이 다하여 마치 다른 곳으로 갈 모양새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얼마 뒤에 벼락처럼 큰소리를 지르며 곧바로 돌진하여 앞에 와서 붙잡고 때리며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혹은 결박하고 혹은 짓밟았으며 지극히 추악한 말을 하였습니다. 비록 귀를 가릴 수가 없어 다 들었지만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이었습니다. 그 정황을 살펴보면 전적으로 위협해서 욕심을 이루려는 계책에서 나왔습니다. 저희들이 죽을 각오로 지키자 그들 역시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날이 장차 밝아 와서 분묘 아래에 임시로 매장을 하고 떠났습니다. 그들이 대개 아버지의 무덤이라고 핑계를 대고 있는데, 아버지의 무덤이란 곳은 수십 년 전에 투장(偸葬)이 시작된 곳으로, 당시 그 무덤의 주인을 찾으려 하였지만 찾을 수가 없던 곳이었습니다. 그 상놈이 세월이 오래되었다는 것을 믿고 이에 감히 소리치며 오늘날 빙자하는 계책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로써 그 전후(前後)의 몰래 투장한 행적이 차례대로 발각되었습니다.
저희들이 분통함을 견디지 못해 겸읍(兼邑)에 가서 소장을 올리니 엄격하게 관의 처분이 내려 누차 붙잡아 오도록 하였지만 이 상놈은 여기저기 출몰하고 피해 다니면서 끝까지 관의 명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21일 선산 아래에 와서 말하니 전날 무덤으로 사용하려고 했던 곳을 산지기가 날마다 순시하였습니다. 하지만 홀연 오늘밤 사이에 무덤을 썼습니다. 저희들이 더욱 분통함을 이기지 못하여 이러한 이유로 또다시 겸읍에 소장을 올리니 관에서는 유향(留鄕)과 수교(首校)에게 전령(傳令)을 내려 그를 붙잡아 올려 보내도록 하였지만 저 상놈이 한결같이 피하면서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그 문서들을 보면 이 사태의 전말을 알 수 있습니다.
아, 심합니다. 궁벽진 바닷가에 사는 양반 집안의 체통이 겨우겨우 면면이 전해오고 있지만, 그런대로 믿고 자립할 수 있는 것은 명분(名分)이며 법전(法典)입니다. 저 김성근은 도장(都長)을 맡고 있는 상놈으로 거리낌 없이 사대부 집안의 선영에 침범하여 묘를 쓰니 그 죄가 극히 완악합니다. 발각되자 그 현장에서 때리고 욕설을 마구 해대니 지극한 변고입니다. 또 이 사태로 관가에서 찾아서 붙잡아 오라고 명하였지만 한결같이 관아의 명령을 거역하고 한편으로는 그 곳에 몰래 매장까지 하니, 그 상놈의 눈에는 양반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관아의 명령 역시 족히 두려울 것이 없다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다면 명분이 설 곳이 없고 법전이 시행될 곳이 없을 것입니다. 그 어리석고 완악한 습속은 지극히 애통합니다.
산소의 위치로 말하자면 안산(案山)에서 곧장 뻗어가는 곳과 백호(白虎)의 머리 부분은 풍수가(風水家)들의 이른바 매우 소중한 곳이라고 합니다. 더구나 분묘 아래 있어서이겠습니까. 저희들이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여 본관께서 돌아오시어 직무를 맡기를 기다린 뒤에 이에 감히 밝게 들으시고 처리하시는 수령께 호소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이 사정을 통촉하시어 저 상놈을 붙잡아 와서 엄히 법을 무시하고 명분을 무시한 죄를 다스리시고 전후 투장(偸葬)하였던 곳을 파서 옮겨가도록 독촉해 주십시오. 천만번 매우 간절히 바랍니다.
박택수(朴宅秀), 박정수(朴正秀), 박응수(朴應秀), 박윤수(朴潤秀), 박호수(朴灝秀), 박래수(朴來秀), 박규찬(朴奎燦), 박기찬(朴箕燦), 박익찬(朴翼燦), 박태찬(朴泰燦), 박사찬(朴師燦), 박형찬(朴亨燦), 박중찬(朴仲燦), 박연찬(朴淵燦), 박정찬(朴鼎燦), 박인찬(朴仁燦), 박재대(朴載大), 박재우(朴載祐), 박재구(朴載九), 박재우(朴載宇), 박재덕(朴載德), 박재영(朴載瑛), 박재승(朴載昇), 박재후(朴載厚), 박재욱(朴載旭), 박재기(朴載棋), 박재희(朴載禧), 박재규(朴載奎), ▣…▣ 박재후(朴載垕), 박종호(朴鍾浩), 박종규(朴鍾逵), 박종원(朴鍾遠) 등
[제사(題辭)]
무릇 산송에 관련된 사안은 도척(圖尺)이 아니면 결정할 수 없는데 처음부터 모면하려고만 한다. 지난번에 먼저 거행하다가 이어서 대령(待令)하지 않으니 그 상한(常漢)이 하는 행위가 극히 현란하다. 우선 사실을 조사하기 위해 김성근을 붙잡아올 것. 30일. 주인(主人).
도형을 그려서 올 것. 형리(刑吏). 동일(同日) 처분.
사(使) 압(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