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해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박희녕(朴熙寧), 박사주(朴師周), 박세주(朴世周), 박승주(朴升周), 박영주(朴寧周), 박임주(朴臨周), 박▣▣, 박빈주(朴賓周), 박진태(朴鎭泰), 박진현(朴鎭鉉), 박진우(朴鎭宇), 박진▣, 박진표(朴鎭標), 박진규(朴鎭揆), ▣…▣ 등이 삼가 소지를 올리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삼가 아뢰옵니다. 저희들이 선조 무의공(武毅公)의 분묘에 대한 산송(山訟)에 관한 일로 누차 소장을 올리고 공경히 처분을 기다렸습니다. 족인(族人) 박희복(朴熙復)은 유배를 떠난 지 1년이 넘도록 먼 고장에서 떨어져 있어 병까지 들어 생사(生死)조차도 까마득히 알 수가 없거늘 지금 남섭양(南燮陽)의 경우는 ▣…▣ 그 여러 친척들이 돌연히 나와서 관정에 난동을 부리며 남섭양에게 공갈하여 죄를 자복하지 못하게 하고 양반을 능멸하며 의관을 찢어버리는 등 극히 패악스러운 짓을 못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근자에는 또 망측한 변고를 꾸며 선조 무의공의 분묘에까지 범하고 있으니 저희들이 자손된 입장으로 불초하여 능히 다시 ▣…▣ 저들의 사악한 행동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해져 누대(累代)의 석물(石物)이 곳곳마다 변고를 당하였으니 이는 무슨 세상의 도리이며 교화하기 어려운 인심(人心)이 이와 같은 자가 있겠습니까. ▣…▣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니 저희들이 불초한 점을 자책하고 문을 닫고 숨을 죽이고 있으니 어찌 감히 한 마디라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엎드려 생각건대 남섭양이 완고하게 자복하지 않고서 요행히 죄를 면하려고 하는 계책을 바라고 있으니 더욱 그 악행이 통탄스럽습니다. ▣…▣
저들의 친족들이 난동을 부리고 변고를 일으키며 유생의 통문(通文)을 패악스럽게 거부하고 향인(鄕人)을 모록(冒錄)하여 시비를 현란하게 하고 법전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들로 하여금 겁을 집어먹고 위축되어 감히 움직일 수 없게 하는 것은 실로 남섭양에 관한 옥사가 시간만 끌면서 아직껏 결정이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상의(申相宜)의 경우에도 함께 가서 변고를 일으킨 형적이 그의 계집종의 진술서에 나와 있거늘 병(病)을 칭탁하였기 때문에 따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이미 1년이 넘도록 옥에 갇혔다고 말하지만 마음대로 왕래하고 있으니 이것이 더욱 저희들이 원통하고 억울하게 답답하게 여기는 ▣…▣ 이 어찌 저희들이 원통함을 씻을 때가 아니겠습니까. 감히 이에 일제히 한 목소리로 호소하옵니다. 삼가 아뢰건대 위에서 거론한 남섭양을 영문(營門)에서 엄히 엄한 형벌로 적용하여 저희들의 지하에 계신 선조와 후손들의 원통한 마음을 씻어 주기를 천만번 간절히 바라옵니다.
병진년(1796, 정조 20) 1월 일. 의송(議送)
[제사(題辭)]
아직 자복을 하지 않는 자는 ▣…▣ 질병이 있다고 한 자에게 형벌을 더할 수 없는 것은 사세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영문(營門)에서 응당 다시 분부가 내릴 것이다. 지금 이처럼 와서 소장을 올리는 심히 온당치 않는 일이다. 27일.
순사(巡使) 압(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