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류(所志類)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 디지털 아카이브
 소지류(所志類)   
 
  G002+AKS-BB55_B02500178E
해제작성 김건우
해제작성일 2007-07-20
간행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시기 1683(肅宗9)
【정의】
소지(所志)
[번역]
화민(化民) 박하상(朴夏相)과 박문약(朴文約) ▣…▣ 등이 삼가 소지를 올리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희 선조의 분묘가 본부(本府) ▣…▣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이 선산을 수호한지가 거의 60여년이 되니 ▣…▣ 뜻하지 않게 이번에 울진에서 와서 거주하는 남시평 등이 ▣…▣ 솔가지로 가리고 띠풀로 덮었으니 그 이치가 꺾인다는 것은 이를 근거로 삼으면 분명합니다. 대개 사람의 자식으로 아버지를 장례시키는 것이 그 얼마나 중요한 예(禮)입니까만 오직 풍수설에 현혹되어 시신을 넣은 관이 노출된 것을 생각하지 않으니 ▣…▣ 무릇 산송에 관련된 것은 비록 보수(步數)의 법이 있지만, 또한 수호하는 곳에 금단하는 규례가 있으니 다른 사람들의 선산을 수호한데에는 결코 임의대로 점유할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산주인이 그 곳을 표시하기 위해 매표(埋標)가 있은즉 ▣…▣ 사리로 따져보더라도 응당 스스로 물러나기에도 겨를이 없어야 하는데 어찌 감히 하늘 아래에서 얼굴을 들고 다닌단 말입니까. 불효(不孝)와 불제(不弟)는 법에 있어서 피하기 어려우니, 관에서는 충분히 헤아려 법에 따라 처리한 뒤에 가매장(假埋葬)을 옮기도록 각별히 명령을 내리시어 패륜(悖倫)의 습속을 막아 주십시오. 성주(城主)께서 처분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계해년(1683, 숙종 9) 12월 일. 소지(所志). [제사(題辭)] 결코 양반이 할 소행이 아니고 자식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다. 장례를 치렀는지의 여부를 논할 필요가 없이 본관이 부임한 뒤에 응당 법에 따라 엄중히 그 죄를 다스리고 무덤을 파서 옮기도록 할 것이다. 본관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서 다시 소장을 올리라. 겸사(兼使) 압(押) 화민(化民) 박하상(朴夏相), 박문약(朴文約), 박호(朴滈), 박휴(朴氵+休), 박초(朴濋), 박서(朴湑), 박담(朴潭), 박숙(朴潚), 박진상(朴震相), 박한상(朴漢相), 박정상(朴鼎相), 박성상(朴聖相), 박자(朴滋) 등이 삼가 소지를 올리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번에 남시두(南時斗) 등이 올린 소장을 근거로 저희의 노(奴) 승남(勝男)을 붙잡아 가셨다고 하였기에 저희들이 남시두의 소장 내용을 보니 허다하게 장황한 말로 날조한 것이 아닌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처해 있는 신세를 마치 천지(天地) 간에 지극히 곤궁한 사람으로 불쌍한 사람처럼 표현하였으며, 저희들은 세력을 떨치고 남의 것까지 소유해 버리는 무리라고 지목하여 이것으로 송사를 처결하시는 관리에게 감동시키고 저희 쪽을 협박하였으니, 그들의 실상은 극히 간사하고 교묘하여 또한 감히 사또님 앞에 명백히 가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희들이 일찍이 선산의 청룡(靑龍)과 대안(對案)에 있어 점유하여 계장(繼葬)함으로써 훗날의 우려를 대비하였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남시두가 그 아비의 상(喪)을 당하여 감히 저희 선산을 횡탈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저희들이 금단(禁斷)할 것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집 뒷산에 무덤을 잡는다고 큰소리를 쳐서 원근(遠近)의 사람들을 현혹시킨 연후에 한 밤중을 틈타 운구(運柩)하고 와서 몰래 예전에 점유하려고 계획한 곳에 두었는데 너무 바쁜 나머지 무덤을 제대로 파지 못하고 솔가지로 주위를 가리고 띠풀로 뒤덮어 미처 흙이 관을 가리지 못해 계곡에 시체를 버려두는 것과 별 차이가 없거늘 저희들이 사유(事由)를 갖추어 본부(本府)에 소장을 올리니, 그 처분 내용 중에 “결코 양반이 할 소행이 아니고 자식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다. 장례를 치렀는지의 여부를 논할 필요가 없이 본관이 부임한 뒤에 응당 법에 따라 엄중히 그 죄를 다스리고 무덤을 파서 옮기도록 할 것이다. 본관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서 다시 소장을 올리라.”라고 내리셨습니다. 남시두 등이 여지없이 실상이 탄로가 난 것을 알아서 감히 본부(本府)에 본관(本官)이 있을 때에는 송사를 하지 못하다가 본관의 자리가 빈 것을 엿보아 때를 타서 농간하면서 전적으로 불법으로 투장(偸葬)하는 실정에 대해서는 감추고 심지어 전혀 근거없는 말로 저희들을 무고하고 사또 앞에서 기망(欺罔)하며, 더러는 이미 안장(安葬)하였다고 말하고 혹은 저희들이 관(棺)을 담는 외판(外板)을 훔쳐갔다고 말하고 혹은 무덤 앞 계체(階砌)를 훼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곡직(曲直)을 가릴 필요도 없이 이런 주장에서 간사한 실상이 절로 드러났습니다. 과연 안장(安葬)하였다면 관을 담는 외판이 회(灰) 속에 있어야 하니, 외판을 훔치려고 한 자는 반드시 먼저 무덤을 파야하니 어찌 무덤을 판 죄를 거론하지 않고 외판만을 훔쳐갔다는 말로써 범범히 말을 합니까. 흙을 쌓고 봉분을 만든 연후에 계체(階砌)가 있거늘 아버지의 시신을 넣은 관을 제대로 덮지도 못했으니 무덤의 조경(造景)에 있어서 무슨 겨를이 있었겠습니까. 이미 외판이 없다면 무슨 판을 훔칠 수 있을 것이며 이미 개체가 없다면 무슨 개체를 훼손할 수 있을 것입니까. 승남(勝男)이 이장(移葬)한 일은 저희들이 금양(禁養)하는 선산 국내(局內)에 있고 전부터 점유하고 있던 땅인데 남시두 등이 감히 마음대로 탈취하려는 계책을 세우면 그렇다면 저희 노가 상전의 산기슭 위에 입장(入葬)하는 것은 원래부터 불가함이 없고 또한 그들이 빼앗고자 하는 간사함을 막았습니다. 하물며 남시평 등이 투장하는 술수가 먹혀들지 않고 관아에서 무덤을 파서 옮겨가라는 명령을 내렸으니, 지금 바야흐로 파서 옮기는데도 겨를이 없어야 하거늘 남의 무덤을 파서 옮길 여력이 있겠습니까. 또 전혀 근거 없는 7, 8리(里) 떨어져 있다는 말이 과연 그들의 소장과 같다면 원래부터 금단(禁斷)할 일이 없고 그들이 반드시 장차 친우(親友)들을 모아 영구(靈柩)를 제대로 갖추고 호곡(號哭)하며 입산하여 한낮에 무덤을 만들 것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한 밤중에 관(棺)을 매고 와서 띠풀을 덮고만 갔으니, 이것이 사람의 자식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일로, 도적의 행위를 한단 말입니까. 대개 남시두 등이 타인의 땅을 훔치는 행동은 깊이 따질 필요가 없고 아버지의 해골을 띠풀로 매장하여 깊은 산속에서 다 드러났으니 불효의 죄를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미 엄하게 그 죄를 다스리고 파서 옮겨 가라고 관에서 명령이 있었는데 빙빙 둘러대면서 만일의 하나를 요행으로 삼고 있으니, 나라의 법전을 가지고 논하면 결코 용서할 수가 없으니 관에서는 남시두 등이 무고한 간사한 정황을 통촉하시어 엄히 그 죄를 다스리고 가매장(假埋葬)을 파서 옮겨가도록 하여 한 명을 징계함으로써 여러 사람을 권계하도록 하시옵소서. 겸성주께서 처분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계해년(1683, 숙종 9) 12월 일. 소지(所志) [제사(題辭)] 이 일은 일시적으로 맡고 있는 겸관(兼官)이 응당 처결할 사안이 아니니 본관(本官)이 다시 임무를 맡게 될 때를 기다려 소장을 올려 분별함이 마땅할 일이다. 29일. 겸사(兼使) 압(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