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告身)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 디지털 아카이브
 고신(告身)   
 
  G002+AKS-BB55_B02500119E
해제작성 채현경
해제작성일 2007-06-25
간행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시기 1587(宣祖20)
【정의】
1587년(宣祖20) 11월에 吏曹에서 朴毅長에게 발급한 5품 이하 告身.
[주제]
1587년(宣祖20) 11월에 吏曹에서 朴毅長에게 발급한 5품 이하 告身이다. 이 고신은 進勇校尉 行權知訓鍊院參軍을 맡고 있는 박의장에게 承訓郞 行軍器寺參奉으로 임명하는 내용이다. 조선시대 병사의 試才 및 무예연습을 맡아보던 훈련원의 임시관직인 權知參軍에서 군기시의 종9품직인 參奉으로 발령을 받은 것이며, 그의 품계가 西班階인 進勇校尉에서 東班階인 承訓郞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이 교첩의 발급은 이조에서 이루어졌다.
[용어]
告身은 官員의 任命狀, 辭令狀을 말한다. ‘行守法’은 조선시대 관리의 품계와 관직이 상응하지 않을 경우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이다. 관직이 품계보다 낮은 경우에는 ‘行’을, 관직이 품계보다 낮을 경우에는 ‘守’를 품계 뒤 官名 앞에 쓴다. 이는 『經國大典』 「吏典」 京官職條에 규정되어 있다.
[인물]
박의장(1555~1615)은 본관은 務安, 자는 士剛, 호는 淸慎齋이다. 金彦璣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577년(宣祖10)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에 경주판관으로서 영천성 수복과 경주성 탈환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군공으로 인해 경주부윤으로 승진하였고 정유재란 당시에는 경주를 중심으로 활약하면서 軍餉을 지원하는 데 진력하였다. 임란시의 전공으로 1605년(宣祖38) 宣武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전란 이후에는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에 승진하였으나 재임 중에 임지에서 61세로 사망하였다. 그의 사후에 資憲大夫 戶曹判書에 추증되었고, 1784년(正祖8)에 ‘武毅’의 시호가 내렸다. 영해의 貞忠祠와 九峯精舍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鄭求福, 「朝鮮期의 告身(辭令狀) 檢討」, 『古文書硏究』 9∙10, 1996. 유지영, 「조선시대 임명관련 敎旨의 문서형식」, 『古文書硏究』 30,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