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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002+AKS-AA25_20191_001_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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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명 : 대동유사 (大東遺事v1)


馬韓


箕準爲衛滿所逐率其左右及宮人浮海而南至金馬郡建國稱
韓王統五十餘國大國萬餘家小國數千餘俗好貫耳垂珠纓庶民豐
富山無盜賊刑措不用行者讓路老者不負戴其後二百二年至漢孺
子嬰戊辰爲百濟溫祚所竝○初溫祚不容於其國與十臣南來以求
可居之地於馬韓王王割東北一百里地以與之溫祚後漸強盛見韓衰
弱潛師以襲幷有其國箕氏遂絶不祀合箕子己卯共一千一百三十




기사메타
인명: 준왕(準王)위만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쫓겨나 금마군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한왕(韓王)이라 칭하며 50여국을 다스림UCI 연결
온조왕(溫祚王)[~28]마한을 공격하여 병합함UCI 연결
지명: [행정구역]금마군(金馬郡)[익산시](益山市)

요약해설
기준(箕準)의 마한 건국과 멸망에 관한 내용이다. 기준은 위만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쫓겨나 바다를 건너 금마군에 이르러 나라를 세웠다. 한왕(韓王)이라 칭하며 50여 국을 다스렸다. 백제왕 온조가 처음에는 마한왕의 양해 아래 동북쪽 귀퉁이에 살았는데, 훗날 온조 세력이 점점 강해져 마한을 공격하여 병합하였다. 이로써 기씨도 마침내 끊어져 기자에 대한 제사도 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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