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주최씨세덕록(海州崔氏世德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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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작성김우형(金祐瑩)
작성일2005-09-14
내용시대
언어
간행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초록해주 최씨의 시조인 崔冲과 그 후손들 가운데 주요 인물들의 전기와 언행을 기록한 책.

【정의】

해주 최씨의 시조인 崔冲과 그 후손들 가운데 주요 인물들의 전기와 언행을 기록한 책.

【서지사항】

이 책은 해주 최씨 최충의 28대손인 崔三錫이라는 사람이 최씨 가문의 시조인 최충(984~1068)과 그 후손인 文和公, 文淸公, 忠憲公 등 19명 인물의 전기와 그 덕행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최삼석이 누구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맨 뒷장에는 ‘崇禎紀元後五甲申正月 日 長興刊印’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갑신년인 1884년(高宗 21)에 장흥에서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목활자본인 이 책은 겉장에 『海州崔氏世德錄』이라고 표제가 붙어 있으며, 線裝 2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줄의 윤곽선이 있고(四周單邊), 행간에 경계가 있으며(有界), 半郭의 크기는 22×15.4cm이고, 半葉은 10행 21자로 되어 있다. 판심에는 표제와 권수, 면수가 인쇄되어 있으며, 內向의 한두 개의 꽃잎 무늬가 들어 있는 花紋魚尾가 있다.

【체제 및 내용】

이 책은 총 乾坤 2책, 上下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앞에는 宋綺老의 序文이 수록되어 있고, 그 다음에 總目이 나온다. 총목차 다음에 수록된 「列聖朝受敎」에서는 역대의 왕들에게 받은 직위, 임명장의 내용이나 가문의 내력을 기려 하사한 글들을 소개하고 있다. 상권 처음에는『高麗史』에서 발췌한 해주 최씨의 시조 최충의 전기인 「文憲公傳」이 나온다. 최충의 자는 浩然, 호는 惺齋 혹은 月圃로서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1005년(穆宗 8)에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시작했는데, 國史修撰官, 起居舍人, 中樞直學事, 禮部侍郎諫議大夫 등을 거쳐 刑部尙書中樞使, 知貢擧, 參知政事修國史, 門下侍郎平章事 등 여러 관직을 거쳤다. 최충은 私學十二徒의 하나인 文憲公徒를 창시했으며, 학문과 교육의 발전에 매우 공이 크다는 내용이다. 1053년 나이가 많은 것을 이유로 사직을 청하자 이를 만류하는 조서가 내려 推忠贊道恊謀同德治理功臣의 호와 門下侍中上柱國致仕라는 훈작이 하사되었고, 문헌의 시호를 받았다. 최충은 자신이 비록 화려한 관직생활을 했지만 선비는 모름지기 文과 德行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려야 한다고 두 아들을 훈계하였다 한다. 최충의 전기 다음에는 이처럼 두 아들을 훈계하는 글인 「戒二子」라는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 다음에는 「顯宗行狀」이 간략하게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최충이 현종의 총애 속에서 중요 관직을 맡아 많은 사업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주세붕이 지은 「祭文」, 양촌 권근이 지은 「畵像改模記」, 이면승이 지은 「畵像贊」, 홍양호가 지은 「九齋碑文」, 이유원이 지은 「廟廷碑文」, 조석우가 지은 「書院上樑文」이 수록되어 있다. 「文和公傳」은 최충의 맏아들인 崔惟善(?~1075)의 전기이다. 최유선은 현종 21년(1030)에 과거에 급제한 뒤, 御史雜端을 거쳐 刑部尙書, 判尙書禮部事 등 중책을 역임하고 門下侍中에 올랐다. 守太尉中書令에 추증되었으며, 문종의 묘정에도 배향되었다 한다. 그의 전기 다음에는 그가 지은 詩文 등의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良平公傳」은 최유선의 아들인 崔思齊의 전기이다. 「翰林學士公傳」은 양평공의 아들인 崔약의 전기이다. 「英烈公傳」은 최약의 아들인 崔允儀의 전기이다. 「監察御使公行狀」은 최윤의의 동생인 崔允仁의 행장이다. 「文淸公傳」은 崔滋(1188~1260)의 전기로서, 「高麗史」 「名臣烈傳」에서 발췌한 글이다. 최자의 초명은 宗裕 또는 安이었으나 이후 자로 바꿨다. 자는 樹德, 호는 東山叟이며, 문헌공 최충의 6대손이고 최윤인의 손자이며 우복야 崔敏의 아들이다. 전기 다음에는 최자가 쓴 여러 글이 수록되어 있다. 「忠憲公傳」은 崔有엄의 전기로서 최자의 손자이다. 상권에는 이외에도 몇 사람의 전기와 잡문들이 수록되어 있다. 하권의 처음에는 「副提學公傳」이 나오는데, 崔荷의 아들이자 崔有渰의 5대손인 崔萬里의 전기이다. 이 글 다음에는 그가 지은 시와 잡문이 수록되어 있다. 「海城君行狀」은 崔滉의 행장으로서 최만리의 5대손이자 崔汝舟의 아들이다. 「楊浦公行狀」은 崔澱의 전기이고 「西村公行狀」은 崔沂의 전기로서 모두 최만리의 5대손이다. 이밖에도 하권에는 「黙巖公行狀」, 「持平公行狀」, 「孤竹公行狀」, 「湖隱公行狀」, 「三川公行狀」 등과 각 인물들이 지은 잡문들이 실려 있다.

【자료적 특성 및 가치】

이 책은 한 가문의 내력을 알 수 있는 자료로서 생활사, 시대사, 문화사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다. 오랜 기간의 한 혈통 사람들에 관한 전기와 이력을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소장 현황 및 영인관계】

이 책은 장서각 소장본(2-489)이 유일하며, 영인본은 없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1991). 『한국인물대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1999).